다쳐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흉터를 보고 웃는다
다쳐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흉터를 보고 웃는다.
                                                                            - 세익스피어(?)

시애틀의 도심은 아름다왔다.
비가 자주 왔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거리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상처따윈 입지 않아 하는 표정으로 거닐고,
날이 개자 홈리스들은 파트너-기타든 개든 친구든-와 함께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다.

지난 5년에 걸친 작업은 구체적인 결과를 드러냈고, 그닥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결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와의, 세상과의 많은 타협이
현명했던 것인지, 아니면 비겁했던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직은 둘을 구별할 수 없었다.
쳇바퀴를 멈추게 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정도의 힘 따윈 없었고,
나의 작업과 다시 마주하고 그것을 평가할 용기조차 아직은 없었다.
나는 보잘것 없음을 안다.

여섯 시간 남짓 시간이 주여져,
홀로 "스파이더맨 3"를 보았다.

나는 코믹스의 등장인물들을 사랑한다.
상처가 있고,
치유가 있고,
성장이 있고,
어쨌든 인생은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것 아니던가.
다들 진지하고, 나름 절박하다.

고블린 얼굴의 큰 흉터와 슬픈 눈빛, 상처와 흉터는 그를 나아가게 한 것인가.
샌드맨의 회한과, 무너져 가는 몸을 추스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그는 자신의 모습을 찾았는가 .

극장은 불과 네 다섯 명 밖에 있지 않았지만,
유치해지는 것은 싫었지만,
결국 꽤 오래 눈물을 흘렸다. 

낯선 도시에서,
다른 이들에 섞여 있어 다행이었다,
그닥 외롭지는 않았다,  
델리샾의 커피는 그저 그랬지만, 담배는 언제나처럼 손이 미치는 곳에 있었고
바다 바람은 나쁘지 않았다. 

울버린의 칼날이 손등을 찢고 나올때의 아픔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할 뿐,
이해란, 판타지 세계에서 존재할 뿐,
통증의 깊이와 넓이는 다쳐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다
by maybe | 2007/06/15 00:43 | 하이틴 로맨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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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보클레어 at 2007/06/22 15:46
다쳐보지 않고도 상흔을 가진 이의 과거를 헤아리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다치지 않으려는 것은 이기적이죠. 에고에 어쩔 수 없이 매몰된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에고를 공감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저도 인생에서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늑대같은 영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maybe님 스타일의 '늑대같이 고고한 독백'이 정말 멋집니다. 문체를 바꿔볼까도 생각중;;)
Commented by maybe at 2007/06/25 23:53
보클레어님/ 혼자 노니 독백이구요, 늑대보다는 닭이 훨 낫죠.
남들이 "아휴, 닭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 낫죠.

근데, 주위를 보면, 다른 이의 감정을 잘 읽는 사람들이 크게 성공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었다던가, 소수자로서 항상 다수자의 눈치를 보고 살았다든가, 노는 보이 혹은 노는 걸로 화려한 편력이 있다던가...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능력은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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